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3-11-11 23: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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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의 무릉도원'

  전 영 백(미술사학,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사람에게 한 끼의 식사는 가장 기본이며 필수다. 천하에 내로라하는 부자도 지하철 노숙자도, 누구든 끼니를 채워야 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또 유일하게 공유하는 바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수성찬이든 소찬이든 일회성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아쉬워, 천하 진미가 차려진 상을 앞에 둔 서태후는 먹은 것을 토해내고 또 먹으며 억지를 부렸다. 서태후처럼 백이십 가지 넘는 음식을 한 끼에 먹든, 라면 한 그릇을 먹든 우리의 위엔 용량이 정해져 있으니, 신체적 조건에 메어있는 인간의 한계를 새삼 느낀다. 아무리 지적으로 우수하고 정신력이 뛰어난 사람도 결국 신체의 제한을 받는 법. 본래는 연결될 수 없는 정신과 신체의 신비로운 통합으로 살아가는 우리건만, 둘 사이 간극은 인간이 풀 수 없는 단절이자 신만이 아는 수수께끼다.

 

 하루 K의 작품을 보면 잘 차려진 한 상 식사를 받는 기분이다. 한 끼에 정성을 모두 쏟은 그런 식사 말이다. 그의 <와신짬뽕>(2019)과 <맛있는 산수(부산기행)>(2020) 등을 앞에 두고 있으면 저절로 군침이 돈다. 동양화의 전통적 산수와 각종 산해진미가 어우러져 있는 도시락 <산수를 담다(H씨의 도시락1>(2020)도 근사하다. 한 끼의 ‘눈요기’가 충분히 되고도 남는데, 이렇게 정성스런 식사를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지를 생각한다. 미각을 시각으로 전이시키는 데 성공한 이미지들이다. 더구나 위의 작품들은 대작이라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서양의 고전 단테의 『신곡』에서 꼽는 아홉 가지 지옥들 중, 세 번째가 식탐의 층이다. 중세 시기 음식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은 용서받지 못할 중죄였다. 노년에 이르러선 가장 최종으로 남는 욕망이 다름 아닌 식욕이다. 끝까지 잡고 놓지 못하는 식욕은 가장 절실한 생명 줄인 것이다. 말하자면 육신과의 마지막 연계인 셈이다. 스스로 곡기를 끊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단한 의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음식에 대한 태도가 그 사람의 존엄성을 대변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바로 그 사람인 셈이다. 자신이 먹은 것이 바로 자신이다. ‘섭생 주체’라는 말도 있을 법하다.

 

 2012년부터 ‘맛있는 산수화’를 제작해온 하루 K는 처음부터 음식산수를 그릴 생각은 아니었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면서 산수화를 포함한 전통 회화를 습득한 그에게 동양 미학은 우선 정신성의 추구이고 산수화는 이상향의 표현이었다. 작가는 옛날의 이상향이 오늘날에는 왜 통용되지 않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가 근본적 회의를 느낀 것은 전통적 표현의 고답적 방식이라기보다, 오늘의 세대와의 무관성(無關性)이었던 듯싶다. 일반적으로 동양화 전공자는 정형의 모사에 기반 한 표현방식을 갑갑하게 느끼는데, 하루 K는 오히려 자신이 새롭게 고안한 편집적 구성에서 이를 적극 활용해 왔다. 절경의 산수와 폭포, 그리고 노송과 정자는 음식과 함께 소담하게 그릇에 담겨 지금, 여기의 일상에 제공된다. 그가 도입한 전통화의 산수와 화조가 옛 모습 그대로 우리의 생활 속으로 개입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혼종성은 시대와 시대 사이에 이뤄지는 셈이다. 이렇듯 그가 비현실적 조합으로 추구하는 것은 전통 산수화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현대인의 삶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다.

 

 때문에 하루.K 작업이 지닌 내용적 핵심은 전통화의 정신성과 현대 삶을 이루는 물질성의 조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서두에서 언급했듯, 인간이 가진 정신과 신체 사이의 근본적 간극을 이으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이렇듯 불가능한 비전을 시각화한 그의 그림을 초현실적이라 부를 수 있겠다. 작품에 좀 더 맞게 부르자면, ‘소확행의 무릉도원’이라고나 할까. 그의 화면에서 인간에게 신체성을 상징하는 음식과 정신성을 상징하는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러한 정신과 물질 사이 단절 내지 괴리는 그의 놀랍도록 세밀한 표현력으로 인해 메워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장 반대적인 요소들, 즉 전통과 현대, 정신과 물질, 이상과 현실, 거대담론과 사소한 일상이 한 끼의 식사에 담겨있다. 그리고 작가의 세밀한 붓질이 그 간극을 감쪽같이 매끄럽게 잇는 것이다.

 

 ‘편집의 묘(妙)’: 풍경화에 대한 동·서양 시각의 조합

 

 하루.K 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창의적인 미적 표현은 다름 아닌 ‘편집’에 있다. 작품에 아예 ‘편집된 산수’라는 제목을 붙인 적도 했지만, 그가 화가로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의 편집 구성은 평면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입체적이다. 동양화의 ‘삼원법(三遠法)’에 정초하여 다층적 공간감을 구현할 것인가, 아니면 서구의 전통적 일점 원근법에 기반 하여 3차원의 깊이감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들을 알아볼 수 있다. 겉으로 보아, 그의 회화에서 편집된 것이 그림의 모티프인 산수와 음식이라 여기지만, 이는 피상적인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건, 서로 크게 다른 동양과 서양의 ‘보는 방식(ways of seeing)’을 편집하는 일이다.

 

  풍경화를 이루는 서양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대상과 주체가 분리된 상태에서 그 이분법을 전제로 이뤄져 있지만, 산수화에 깃든 동양의 시각은 보는 이가 그림 안에 들어가 노니는 와유(臥遊)의 시각이다. 작가는 이 두 가지 근본 시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인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그림 속 작은 인간들은 일종의 ‘와유의 행위자’로서, 산수화에 있던 인물들이 현대인으로 바뀐 셈이다. 커다란 산수에 포함된 ‘소인’들의 모습은 전통산수화에서 보던 첩첩산중의 홀연한 선비나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낚시꾼을 연상시킨다. 한국화 속에 묻혀있던 인간의 모습은 보통 이처럼 작은 스케일로 그리곤 했는데, 작가는 이런 비율을 차용, 현대인들을 음식풍경 속에 배치한 것이다. 시간여행에 기반해 사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퓨전 드라마인 셈이다. 현대의 일상적 모습으로 변한 소인들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세상이 자신들의 현실인 양 활동한다.

 

  본래 전통 동양화에서 산수는 위대하고 인간은 왜소하게 등장한다.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자연의 이치를 표준으로 하여 만물이 운행하며 인간의 영고성쇠(榮枯盛衰)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그림의 주체는 인간이 되고 자연의 위대성은 왜소해졌다. 하루.K의 접시에 담긴 산수 자연, 그것은 대자연을 인간이 이용하고 요리하는, 마치 음식 같은 한 종류로 바라보게 한다. 이 전복적 사고를 천연스럽게 뒷받침하는 것은 그가 동양화에서 체득했으리라고 짐작되는 삼원법 등의 축소와 확대 기법이다. 예컨대 눈이 일정하게 수평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따라가며 시각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렇듯 편집된 풍경 속 소인들의 삶을 조망하는 거시적 시각이 공존하니, 그것은 다름 아닌 관람자(작가)의 시각이다. 예컨대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처럼 소인국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개입하는 ‘거인’이 그림 밖의 관람자인 것이다. 관람자는 그림 속 소인들의 세상에 비해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오브제로 그들의 삶에 관여한다. 짬뽕 그릇에 갑자기 큰 젓가락을 들이대거나 자이언트 찻주전자로 차를 붓거나 기둥 같은 빨대를 꽂기도 하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이는 다름 아닌 그림 앞 ‘관람 주체’의 시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를 이루는 시각은 언제나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와유의 행위자’인 소인들의 시각,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관람 주체’인 관람자의 시각인 것이다. 작가는 이 두 시각을 비율의 극단적 대비로, 스케일의 차이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소우주 풍경 속 행위자들의 그림 속 시각은 관람자(작가)의 그림 밖 시각과 서로 연계되어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하는 편집의 핵심 구조인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음식 산수는 분재나 축소된 풍경처럼 드러나는데 여기엔 어떠한 형식이나 정해진 틀이 있을 수 없다. 동양화의 엄격한 형식을 벗어난 작가의 자유로운 구성임을 알 수 있다.

 

감각성의 표현력: 시각, 미각, 그리고 촉각에 대한 탐색

 

 하루.K는 자신의 ‘음식 풍경화’에서 시각과 미각은 물론, 최근에는 촉각에까지 확장하며 다양한 감각성에 대한 탐색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시각에 대한 실험은 가장 근본적이면서 다양하다. 그의 작업에서 평면성이 두드러진 표현과 입체감 및 공간감을 살린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대체로 전자에서 후자로 전이되지만 때로는 양자가 공존하기도 한다. 평면과 입체 사이를 넘나드는 시각적 고민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듯하다. 2019년에 완성한 그의 파격적 설치작업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때 작가는 스케치한 자연을 3D프린터를 이용하여 입체화시키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러나 시각성에 대한 하루.K의 탐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케일에 대한 관람자의 인식이다. 그의 ‘음식 풍경화’에서 산수 부분은 자신이 체험한 자연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분재와 같이 작은 스케일을 제시한다. 그것이 분재처럼 느껴지는 것은 함께 편집된 음식이나 식기가 지나치게 큰 스케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축소 모형처럼 작은 산수와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일상 오브제들은 우리의 시지각을 교란시키고 어느 쪽이 실제인가를 결정짓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의 교란은 대부분의 현대 미술이 유도하듯 언캐니하거나 멜랑콜리하지 않다. 오히려 이것이 무겁고 엄격한 전통회화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시각의 반란이기에 통쾌하고 즐겁다. 요컨대 이렇듯 상식적 스케일을 반전(反轉)시킨 작가의 유쾌한 상상력이야말로 하루.K 회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된다.

 

 덧붙여, 회화의 시각적 표현에 있어 자주 쓰는 ‘완성도’라는 말은 하루.K의 경우 더없이 적합한 듯하다. 그의 그림은 축소해서 보나 확대해서 보나 그 표현의 세밀성에 있어 차이를 식별하기 힘들다. 대형 작품들 중에는 <맛있는 산수>(2013), <화가의 여행풍경 그리고 식사>(2017), <차향만리>(2021)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차향만리>는 세로가100cm,가로가 250cm로 가장 큰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작업은 소작이든 대작이든 그 표현이나 방식에 변화가 없어 전자는 후자의 축소판인 듯 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각적 표현에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말하자면, 보통 작품이 커지면 표현이 성글어지기 마련인데 그의 작품은 정교하기가 마찬가지인 것이다. 화가로서의 갖는 표현력에 대한 자신감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맛있는’ 풍경이 미각성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미각은 식감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촉각성 또한 그림에서 중시하는 감각이다. 예컨대, <햄버거>(2017)에서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과 고기의 육즙, 흘러내리는 치즈의 촉감을, <꽁치구이>(2017)에선 구운 생선의 바삭하고 갈라진 표면을, 그리고 <이씨발라, 김씨발라>(2022)의 경우, 수박의 수분감을 침이 고일 듯 감탄스럽게 표현했다. 그리고 <맛있는 산수(샐러드)>(2021)에서 그는 아예 식재료의 질감 탐색에 나선 듯, 야채의 물성을 안료의 물질성과 바로 연결시켜 나타내었다. 즉 야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오일을 적게 섞은 녹색 물감이 바로 마른 시금치가 되고 유분 많은 주홍 물감이 바로 싱싱한 토마토가 되는 그런 식의 그림이다.

 

 그러나 촉각성의 표현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은 <무지개 무등산>(2019)이라 할 수 있다.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을 그린 대작(227cm×900cm)으로, 하루 K는 이제껏 보지 못한 방식으로 이 거대한 산을 다뤘다. 놀랍게도 산은 알록달록한 담요를 덮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작가가 갖는 ‘산과의 관계’를 가장 개인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가졌던 집이나 모성에 대한 기억이 따뜻하고 포근하며 푹신한 담요와 같은 것이었기에, 그는 고향의 산을 이렇듯 가장 친근하게 취급해 주었던 것이다. 그가 산에 덮어준 담요는 그 무지갯빛 색채와 함께 지극히 부드러운 질감의 최고급 담요로 보인다. 눈으로 만지는 듯한 담요의 표면 촉감은 전시장의 공간조차 따스하게 만들어준다. 그림의 모티프와 갖는 ‘대상 관계(object-relation)’가 이처럼 잘 이뤄진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감각성에 대한 하루.K의 표현력은 그 관계를 가능한 한 가깝게 밀착시켜 주는 것이다.

  

자생적인 토종 팝아트

 

 이렇듯 풍요롭고 다채로운 음식은 현대 소비사회의 포화된 욕망의 한 도상이다. 그것은 삶의 최적화를 위한 정도의 영양소를 넘어서서 종종 중독과 과잉 현상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과거 농경사회 때의 음식문화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을 위한 소비재였다. 그리고 종종 결여와 궁핍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전설처럼 된 춘궁기와 보릿고개가 그것이다. 작가 또한 개인적으로 힘겨운 청년 시절을 지나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도상학적으로 나열된 진수성찬의 식탁을 따라서 그 결여의 기억을 소환하며 패러디한다. 인간의 모든 결여 중에서도 배고픔과 채워지지 않는 식욕은 가장 적절한 것이다. 그는 과도하게 넘쳐나는 음식을 과잉 소비의 한 형태로 드러내면서 빈곤한 시대의 자기 체험을 반어적으로 오버랩 시키고 있다.

 

 따라서 하루.K의 작업은 한국화의 팝아트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자생적인 토종 팝아트.’ 작게 묘사된 인간들의 고립과 넘쳐나는 물질의 풍요, 특히 음식, 남녀, 산해진미의 진경들을 편집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팝아트의 기원이 리얼리티를 미술로 가져오려던 것임을 상기할 때, 하루.K의 작업에도 그가 속한 한국 사회의 현실성이 배어있다. 예컨대, 폭풍 성장한 한국사회의 내면에 깃들인 자아의 상실과 혼돈의 그림자가 얼핏얼핏 보인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작가의 자전적 개인사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옛 농경 문화가 후기 산업 사회의 포화된 욕망과 갈등하는 풍경이 작가의 작업에 일관되게 보이는 것이다. 관람자는 이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시대의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는 팝아트 작가로서 하루.K는 최근 팬데믹 상황을 작업의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예컨대, 코로나가 우리의 식사 방식을 바꾼 것 중 일회용 도시락의 사용을 들 수 있는데, 이 모티프를 그의 <산수를 담다(H씨의 도시락)1>(2020)에서 볼 수 있다. 요즈음 특히 익숙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 풍경이 세대의 애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최근 작업에 도입하고 있는 ‘언어 유희(word play)’는 그의 해학성을 돋보이게 하는데, 작품의 표현 능력을 한층 확장시키고 있다. <이씨발라, 김씨발라>(2022)와 <반하라봐라>(2022)에서 보는 풍자와 해학은 한글의 재미있는 어감과 의미의 이중성을 활용하여 말과 이미지 사이 역동적 교차를 유도한다. 부정적 비꼬임이 아닌 밝은 감성의 뒤트는 묘미가 쏠쏠하다.

 

그린다는 ‘손맛’: 재현의 극사실이 아닌 상상의 세밀화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세밀 채색화의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단조로운 색채 추상의 열풍 속에서 자기만의 ‘그리기’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는 80년대에 많이 등장한 동양화 영역의 극사실주의와 전혀 다른 세밀 채색화인데, 그가 정교하게 그려낸 것은 다름 아닌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꿈을 자세히 그린다는 게 가능한가? 그런데 그의 그림에선 꿈의 세계가 마치 현실인 양 지극히 사실적이다. 한 마디로, 원본의 사진적 재현이 아니라 상상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작업의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오랜 견인과 끈기로 밀고 가는 ‘그리기’라는 노동에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실종되어 버리다시피 한 그리고 칠하고 다시 그리고 칠하는 동양화적 기법이 거의 모두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회화의 맛’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내공이 보이는 사생과 묘사력으로 자신의 화가적 DNA가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탐색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미대 교육을 받았지만 본인이 나서 태어나고 자란 남도의 흙과 바람의 자취를 그림 속에 담는다. 서화 수집을 취미로 둔 조부 덕분에 어려서부터 의재, 남농, 소치의 작품을 접한 작가가 동양화를 전공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의 손맛은 그 옛날 광주 및 진도를 중심으로 성행한 수묵 중심의 ‘호남 남화’의 맥을 극채색과 정밀 묘사로 계승하는 듯 보인다.

  

 소통을 위한 ‘리얼리스트 상상화’

  

하루.K는 산수와 음식을 조합하기 위해 등산을 하며 대상을 스케치하고 그 장소에서 맛본 음식을 묘사한다. 그의 작업은 여행과 음식을 같이 다룬다. 직접 본 풍경의 일부를 수집해 접시나 사발에 담아 분재처럼 그린 것이나, 실재 장소의 느낌을 살리고자 그곳의 돌과 나무를 편집한 산수에 자신이 먹어본 음식이 재구성되었다. 말하자면 작가는 지극히 개인적 체험에 기반 한 리얼리티를 구현하는데 그 수집과 편집의 재구성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이상향’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는 실재로 체험한 리얼리티를 상상화로 전환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하루.K가 보여주는 전통 산수화에 대한 저항에는 부정적 태도가 없다. “현대인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재고해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이상향을 발견하고자”한다는 작가. 관람자는 평범하기에 친근한 K씨의 일상적 행복을 같이 나누기에 부담이 없다. 음식과 여행이 어우러진 하루의 즐거움. 그가 차려준 푸짐한 한 끼의 식사를 나누는 순진한 기쁨. 그의 그림은 오롯이 관람자를 위한 것이다. 그가 그린 맛있는 음식들에는, 한껏 물이 올라 눈을 유혹하는 네덜란드 베니타스(Vanitas) 정물화에 깃든 인생무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K가 제시하는 현대인의 이상향은 누구에게나 실현 가능해 보인다. 그것이 그저 하루 한 끼의 맛난 식사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그렇듯 일상 속 소확행에서 얻을 수 있으면 맘먹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오늘 당장, 그의 그림이 유도하듯 겸손하고 사소하게 나만의 이상향을 향유해 보자.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내 앞에 차려진 풍성한 식탁보다 스스로가 가진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면서, 천천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맛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