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3-11-11 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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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맛[一味]이 스스로 나타나는 정원술[庭園術]의 스펙터클, 하루K 작가

 김남수(안무비평)

 

 

 

 

#1. “땅과 연못의 모양에 따라 각 장소에 맞는 풍정[風情]을 구상하면서 자연풍경을 회상하여 그 장소는 이와 같았구나라고 견주어 생각하면서 정원을 만들라.” (11세기 <샤쿠테이키[作庭記]> 중에서)

 

 

#2.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중략)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 선우사중에서)

 

 

하루K 작가의 평면에서 나타나는 이 판타지의 영역은 우선 밥그릇이나 국그릇 혹은 큰 접시 안에 담긴 음식()의 배치가 보여주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이다. 삶은 파슬리 재료로 만들어진 숲 속에 한옥 정자가 소담하게 보이고(<맛있는 산수(담양삼거리농원)>, 2022), 우동 면발이 폭포수의 물길을 능청스레 실사화하며(<맛있는 산수(새우튀김우동)>, 2021), 썬 토마토 조각이 바위로서 은유되어(맛있는 산수(샐러드)>, 2021) 배치된다. 음식()이 돌과 나무 그리고 폭포수 사이에 의뭉스럽게 배치되어 있기도 하고, 아예 음식 자체가 물길이나 바위, 혹은 맛있는 호수 마치 신화 속에 늙지 않는 넥타르 술로 된 대양[大洋]에 에워싸여 있다처럼 를 이루고 있는 풍경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음식의 시적 서정에서 최고봉을 치닫는 백석 시인의 저 조합 흰밥과 가재미와 나처럼 하루K 작가의 배치술[agencement]은 교묘하기 이를 데 없고, 심모원려가 돋보인다. 음식()이 마치 뜰과 연못과 돌, , 나무숲과 덤불 그리고 폭포에 이르기까지 실로 가장 흥미로운 풍경들을 내 것으로 가져와(...) 현장에 맞게 잘 해석하여 정원으로 만들고 있다.” 이 교묘한 배치술에 대한 해독을 보다 세밀하게 전개하는 것이 하루K 작가의 작품이 갖는 의미의 그물코를 여는 비평 작업이 될 것이다.

여기에 또한 비평적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은 실제의 풍경과 음식에 의해 가상화[假像化]된 풍경이 교묘하게 섞여 있으며, 전체로서 어우러져 큰바위 얼굴처럼 생명적 풍경의 기호, 생명성의 종합적 기호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또한 실제의 풍경이라고 해도 미니어처화된 풍경인 동시에 그 축소지향된 풍경 속에서 구성주의적으로 재활성된 새로운 풍경이 튀어나온다. 음식()과 실제 풍경으로 귀속되지 않는 제3의 풍경이 합성된다는 뜻이다. 하루K 작가의 이 평면이 갖는 특장은 이러한 높은 지점에 있을 것이다. 즉 여러 레이어에 걸쳐 있는 풍경들의 배치술, 3의 풍경 출현, 풍경들의 조합 등등에 의해 작가는 그야말로 마술적 식경[食景]이라고 할 만한 자신의 생활적인 이상향을 도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작업인가. 마술적 리얼리즘, 마술적 식경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평면 작업이 갖는 감각의 지평은 공감각[共感覺, synaesthesia]이라고 해도 시각과 미각이라는 차원이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은 시각과 미각이라는 두가지 감각의 선후를 말하는 것이나, 하루K 작가의 경우에는 보기좋게 어긋난다. ?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풍경은 그 두가지 감각이 동시적인 욕망의 충족으로 즉각 이루어지는 약속의 정경이자 계약의 광경이기 때문이다. 마치 1950년대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의 안방에 들어앉은 흑백TV를 시청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던 그 세계 초유의 환희가 이 정경/광경에는 낯설게, 그러나 동일하게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다만 하루K 작가의 경우에는 미각을 충족한다면, 권리상 그 시각 세계는 차차 붕괴해간다는 제로섬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폐허의 상상력 역시 함께 잠재화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공간적으로 폐허의 근대가 포스트모던도 다 지난 지금, 역사의 공백 지대가 회색톤으로 저녁놀만 붉게 물들이는 지금 이 평면 속에서는 가장 불길하게, 동시에 가장 깊게 도드라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은밀하게 은폐되어 있다. 이 이중의 노출/은폐의 상태는 우리에게 포만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허기의 재생을 불러내며, 끊임없는 갈애[渴愛], 어쩌면 가장 좋았을 때의 자본주의적 약속 내지는 노스탤지어화된 자본주의의 기억을 상기하게 한다고 할까. 그런 측면에서 하루K 작가의 이 평면 작업은 상업적인 잭팟이 터질 여지가 없지 않다고 하겠으며, 결국 향수산업으로 화해가는 것이 이 평면의 경우에는 폐허의 추억담을 밑그림으로 하여 폭로되는 무[]의 역사로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중적인 애상에 잠길 수밖에 없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3. “서양 중세의 TO지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은 ‘T’자 형상으로 그리고, 그 주변주의 대양[大洋]은 대륙을 에워싼 ‘O’자 형상으로 그린 세계지도 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 지도에서 세계는 에덴을 표상하는 지상낙원의 지도학적 표현에 의해 가능했다.”(지리학자 정인철)

 

 

일본으로 도래한 백제인들에 의해 제작된 정원술의 책 <샤쿠테이키>는 앞서 말한 것처럼 뜰과 돌, 나무숲, 폭포, , 연못=호수 등을 정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배치하는 기술적 매뉴얼이다. 하루K 작가는 마치 이 백제풍의 정원술을 오늘날의 팝컬처에 비춰서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고전의 재맥락화 작업이 풍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생활적 이상향, 혹은 유토피아라고 할 만한 자신만의 낙원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데, 이는 백제-일본-현해탄 커넥션을 활용하여 마치 서양 중세의 소위 TO지도를 방불하게 하는 기획이 돋보인다.

TO지도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시공연속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공간 역시 시간화되며, 시간은 공간 속에서 정지하기도 한다. <맛있는 산수> 시리즈에서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도원경’[桃源境]적인 세계가 엿보이는 것은 범상한 일은 아니리라. 물과 돌, , 나무 그리고 그것들이 음식과 비음식으로 재현되고 다시 그렇게 종합된 풍경 위에 사람들이 해학적으로 등장하는 세계 자체가 시간이 정지된 하나의 낙원의 풍경일 수 있다는 것은 웬지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하루K 작가는 이러한 유토피아 충동을 갖다가 스스로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면밀하게 계산하고 배치에 배치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각고의 과정이자 부단한 아이디어와 배치술[agencement]의 과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식이면서도 풍경인, 이중의 존재론적 위상이 놓여져 있는 장소는 그릇 계통의 우묵한 영역이라, 그 우묵한 영역에 들어찬 음식()과 실경[實景]으로부터 불러들인 풍경적 요소들이 하나의 정지한 공중정원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은 우리 마음의 주파수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 아래 도사린 폐허로 인해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합성된 자연, 인위의 자연일 수밖에 없는 이 자연은 그러나 자연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스런 자연을 살며시 호출하면서 자연-미디어가 태고의 시간 동안 품어온 본능을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이러한 역설적인 방식의 제시를 늘 근대의 몫으로 수렴시켰으나, 이미 소멸해버린 역사주의적 구분을 무화시키면서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주어진 조건에서 이러한 TO지도 스타일의, 도원경 같은, 억누를 수 없는 유토피아 충동이 빈발하는 평면세계를 자못 낙원에 온 것으로 즐겨야 하리.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다만 그러한 충동이 갖는 일시성 속에서 낯선 슬픔 또한 이 평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본다. 풍경의 축적[縮積]과 축적[蓄積] 속에서 하루K 작가가 앞으로 어떤 모색과 탐문을 할지 관심있게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