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1-02-06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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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 이미지

2019 청년작가초대전: 와신짬뽕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안소연

미술비평가

 

 

하루.K의 개인전 와신짬뽕은 숱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전시 제목부터 그러한 인상을 크게 풍긴다. 작가는 바뀔 와(), 나아갈 신()의 한자를 조합하여 만든 이 단어를 자신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의미로 제시한 것 같다. 그 뒤에 짬뽕이라는 노골적인 단어를 병치해 놓음으로써 작업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그 다양성의 혼재를 누구나 짐작 가능하도록 표출시켜 놓았다. “와신짬뽕이 함의하는 의미는 그렇거니와, 이 정체불명의 단어는 사실 그 낱낱의 의미보다는 병렬적인 단어 결합 방식과 그러한 태도가 파생시킨 임의적인 형상들의 뒤섞임을 이미지처럼 환기시킨다. 말하자면, 그 내용과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뒤섞임이라고 하는 적나라한 결합의 방식들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강조하는 셈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하루.K는 초기 작업부터 도시 풍경을 비롯해 평범한 주변의 풍경을 작업 소재로 다뤄왔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전통 회화에서의 산수(山水)”를 작품의 제목으로 가져다 쓰면서 전통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인식해온 여타의 많은 작가들과 그 관심을 공유해온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그는 맛있는 산수”, “편집된 산수”, “실경산수등의 연작에서 산수를 매개로 전통 회화의 형식을 탐구하면서 그것을 참조해 자신의 조형적 특성을 구축하려는 여러 시도를 모색해 왔다. 이번 전시 와신짬뽕도 그 연속에 있으며, 조금 넓은 범주에서 이미지의 수집과 편집의 방식을 통해 전통 산수화의 맥락을 변형시켜() 그 다름으로 나아가는() 교차의 지점을 탐색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 면면을 살피면서 나는 그가 왜 산수에 집중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특히 전통 회화와 관련해서 그가 참조적 변형을 시도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산수화에 대해 재인식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명확한 실체와 사유의 맥락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동시에 들었다. 최근의 작업 <Rainbow Moodeung Mountain>(2019)을 보면, 사실 산수화라 부를만한 정황을 여기서는 쉽게 찾아볼 수는 없다. 제목에서도 그동안 반복됐던 “-산수라는 낱말이 없어졌고, 전통 회화의 지필묵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 회화의 관습적인 기법을 참조하거나 전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큰 캔버스에 유화로 채색한 이 무지개 산에서 여전히 유효한 산수화에 대한 참조는 무엇이었을까. 이 작업에 대해, 하루.K는 한국 현대 사회 및 정치사의 관점에서 주로 다뤄져 왔던 무등산이라는 사생의 소재를 새로운 가치 차원에서 관찰하여 조형적으로 접근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화려하게 빛나는 무지개 색 무등산을 큰 화면에 옮겨 놓고, 그는 반짝이는 유화 물감의 물질적 특성을 십분 발휘해 이 거대한 장면과 마주한 어떤 순간에 상상 속의 이상향에 이르고자 한 모양이다. 자연과의 합일을 사유했던 산수화의 정신성에 비추어 볼 때, 그는 과거사에 짓눌린 무등산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라는 현실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낙원으로서의 이상향을 사유해보려 했을지 모르겠다.

 

거대한 평면의 캔버스 안에 비현실적인 무지개 산의 형상을 매우 추상적이고 조형적으로 드러냈던 <Rainbow Moodeung Mountain>과 비교해 볼 때, <편집된 산수>(2019)는 축소된 자연의 풍경을 마치 조감도처럼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여 또다른 차원에서의 스펙터클한 풍경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런 탓에, <편집된 산수>는 시각적으로 총체적인 거리두기로부터 시작하나 미시적인 시점으로의 급격한 전환과 더불어 회화적 공간 너머로의 진입을 시도하면서 그 양가적인 시각 경험을 선명하게 병치 시키는 특징을 나타낸다. 마치 그것은 오래된 산수화에서 거대한 원경으로서의 자연 풍경 안에 미시적인 현실 세계의 이야기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봤던 익숙한 경험을 환기시킨다. 하루.K<편집된 산수> 설치작업은 그러한 양가적인 시각 경험의 공존을 구체화한다.

 

예컨대, 족자 형식의 두루마리 그림에는 거대한 자연의 풍경이 길게 펼쳐져 있는 듯하나 하염없이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을 조망하던 눈이 착시를 일으키듯 마치 분재된 풍경처럼 매우 작게 축소된 크기에 대한 지각과 그것으로 인한 왜곡을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두루마리 안의 세계는 거대한 자연의 풍경 같기도 하지만 축소된 혹은 분재된 풍경 그 자체의 재현 같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미묘한 차이를 갖는다. 특히 시점에 있어서 전혀 다른 위상을 갖는데, 풍경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망하던 눈이 미시적인 관점에서 직접 그 대상과 나 사이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신체 경험으로의 하강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트린 두루마리의 풍경과 겹쳐 있는 입체 풍경은 그러한 감각을 더욱 배가시킨다. 하루.K는 무등산에서 주워온 크고 작은 돌과 3D 프린터로 출력한 축소된 산의 형상을 뒤섞어 일종의 조감도 같은 산수 풍경을 연출했다.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고, 입체와 평면이 중첩되어 있으며, 풍경과 사건이 마주하는 편집된 산수의 면면을 나타낸다.

 

이때, 전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조망하던 눈은 낱낱의 사건과 모조 자연물의 허술함과 뜻밖에 납작한 가짜 입체물들에 직면하면서 이 허술하기 그지 없는 양가적 상황을 알아챘다는 안도감에 몸으로 시선을 낮춰 풍경 깊숙한 곳까지 다가가게 된다. 작가는 이렇듯 산수화가 지닌 극단적인 시점의 전환과 편집적 구성을 참조해 그러한 효과를 극대화할 형식과 매체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는 듯하다. <오토리버스(일상에서의 탈출)>(2019)<편집된 산수>를 이루고 있는 입체 형상들을 재료 삼아 만든 영상이다. 말하자면, 그는 관람자의 시점의 전환을 스스로 참조하여 카메라를 통해 이 축소된 거대한 풍경안으로 몸을 숙여 진입할 경로를 찾는다. 그리고 그는 이 모조 산수의 풍경 속에 끝없이 조율된 현대도시의 삶을 중첩시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환경과 그 안에서 조율된 움직임들을 하나의 수사적인 이미지들로 나열해 보여준다.

 

산수 연작에 있어서 초기 작업에 해당하는 <맛있는 산수>(2013)로부터 <편집된 산수(짬뽕)>(2019)에 이르는 그의 회화를 보자. 하루.K는 특정 지역에서 사생을 통해 얻은 자연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사진 찍어 수집해 두었다가 수집된 이미지들과 함께 남겨진 기억을 바탕으로 풍경을 경험했던 일련의 상황을 화면 안에 재구성한다. 그러한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자연물을 수집하여 재구성하는 분재나 수석의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 근거를 마련하고 그 취미의 제스처를 참조해 분재된 풍경이나 축소된 풍경의 병치에 집중해 왔다. 게다가 마치 지역 특산물로 만든 도시락을 연상시키기까지 하면서, 스스로 경험하고 사생했던 풍경을 편집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이미지들의 나열을 공고히 해왔다. 그는 동양화의 전형성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형식의 전형성 보다는 인식의 전형성에 대한 회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전통회화에서 형식적인 것들을 지탱하는 유희적 태도와 자유로운 상상력이 그림 속에 갇혀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인식의 엄격함에 대해 불편함을 가졌을 테다.

 

<그림 속 그림>(2019)에서, 그는 그러한 엄격함으로부터의 해방을 사유하듯 그림 속의 그림들을 구성하는데 집중했다. 자연과 풍경이, 결국에는 삶의 모든 장면들이 그림이 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그는 전통 회화의 세계관을 탐구한다. 때문에, 하루.K산수연작에는 동양화의 재료나 기법에 대한 고집스러움이 크게 없다. 그는 그림 바깥에서 그림 안으로 이어지는 미학적 경험과 사유와 그것에 대한 유희를 산수 이미지로 풀어내는데 더 큰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